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반도체 관세를 예고했습니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를 면제하거나 깎아 주고, 그러지 않으면 시장에 들어오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구조입니다.
새로 짜는 설계가 아닙니다. 러트닉은 제약에 적용했던 방식을 모델로 하겠다고 직접 밝혔고, 그 방식은 이미 시행 중입니다. 최대 100% 관세를 걸어 놓고, 미국 내 생산과 가격 합의를 하면 0%까지 내려 주는 형태입니다.
한국이 반도체에서 확보한 것은 관세율 상한이 아니라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입니다. 절대 수준이 아니라 순위를 보장받은 것이고, 그 차이가 앞으로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정합니다.
상무장관이 한 말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수입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발언은 단순합니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를 내지 않고,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으면 세계 최고의 시장에 들어오기 위해 관세를 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세율을 먼저 정하고 예외를 두는 방식이 아닙니다. 미국 내 투자를 하느냐 마느냐로 세율이 갈리는 구조입니다. 관세가 목적이 아니라 투자를 끌어내는 수단이라는 뜻이고, 러트닉은 이 연계 구조가 맞다고 확인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대만이 다음 주에 200억~3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이 문장이 뒤에서 다시 나옵니다.
이 방식은 처음이 아닙니다
러트닉은 제약에 적용했던 접근을 모델로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제도는 이미 시행 중이라 문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근거 법은 무역확장법 232조입니다. 안보를 이유로 특정 품목에 관세를 매길 수 있게 한 조항이고, 자동차와 철강에도 같은 조항이 쓰였습니다.
의약품 관세의 특징은 세율을 하나로 정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같은 약이라도 파는 쪽이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세율이 갈립니다.
아무 조건도 충족하지 못하면 특허 의약품 기준 최대 100%입니다. 미국 보건당국과 약값을 낮추기로 합의하고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옮기면 2029년 1월 20일까지 0%입니다. 한국처럼 미국과 무역합의를 맺은 나라는 그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15%가 상한입니다. 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는 1년 유예 뒤 다시 판단합니다.
0%와 100% 사이의 거리가 100배포인트입니다. 그 간격이 곧 협상력입니다. 세율을 매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세율의 폭을 벌려 놓고 상대가 움직이게 만드는 설계입니다.
반도체판에는 한 가지가 더 붙습니다
반도체판에는 이 조건 구조에 하나가 더 붙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물량 연동입니다.
미국에서 생산하겠다고 약속한 만큼에 연동해 일정 분량을 무관세로 들여올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약속을 이행할수록 무관세 한도가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의약품 쪽보다 조건이 빡빡해지는 지점입니다. 의약품에서는 생산시설을 옮기기로 합의하면 세율이 내려갔습니다. 물량에 연동하면 합의가 아니라 실제로 지은 만큼만 열립니다. 되돌리기 어려운 설비 투자를 계속 이어가야 혜택이 유지되는 셈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셈이 복잡해지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미국 공장은 인건비와 건설비가 국내보다 비쌉니다. 그런데 짓지 않으면 관세를 맞습니다. 어느 쪽이 싼지가 관세율에 따라 뒤집히고, 그 관세율을 정하는 쪽은 미국입니다.

한국이 받은 것은 상한이 아니라 순위입니다
여기가 오늘 글의 핵심입니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하면서 상호관세 15%를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반도체는 그 15% 계산에 들어가는 품목이 아닙니다. 철강·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무역확장법 232조로 따로 다루는 품목이라, 상호관세 상한과는 다른 트랙에 있습니다.
반도체에 대해 한국이 받은 문구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적용한다는 내용, 즉 최혜국 대우입니다.
이 둘은 성격이 다릅니다. 상한은 절대 수준을 막아 줍니다. 최혜국 대우는 순위를 지켜 줍니다. 남들이 다 같이 나빠지면 우리도 같이 나빠지지만 약속은 지켜진 것이 됩니다.
그래서 러트닉이 대만의 추가 투자 계획을 같은 자리에서 언급한 것이 그냥 지나갈 이야기가 아닙니다. 경쟁국이 투자를 더 얹으면 “불리하지 않은 조건”의 기준선 자체가 위로 움직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조건이 나빠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한국 반도체의 대미 조건을 정하는 변수는 관세율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를 투자하느냐, 그리고 경쟁국이 얼마를 투자하느냐입니다.
오늘 시장은 조용했습니다
관세 예고가 나온 날 국내 증시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코스피는 16.76포인트(0.26%) 오른 6,579.48로 마쳤습니다. 다만 장중에는 중동 긴장으로 밀렸다가 후반에 되돌린 흐름이었고, 코스닥은 1.71% 내려 790.21로 800선을 내줬습니다.
업종은 또 갈렸습니다. 보험이 4%대, 건설과 전기가스가 3%대로 올랐고, 전기전자는 약보합이었습니다. 이틀 전 3.50% 빠졌던 건설이 이번엔 오른 쪽에 있습니다.
당사자인 두 회사는 조용했습니다. SK하이닉스가 1.05% 내렸고 삼성전자는 0.20% 내렸습니다.
관세가 아직 예고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세율도, 시행 시점도, 면제 조건의 구체적 문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장이 반응할 수 있는 것은 확정된 숫자이고 오늘은 그것이 없었습니다. 이 사건의 값은 오늘 주가가 아니라 앞으로 몇 달에 걸쳐 매겨집니다.
내일 확인할 것
국내 정규장은 마감했고 미국장은 아직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장 전에 볼 것을 적습니다.
- 대만의 추가 대미 투자 발표 — 러트닉이 다음 주로 예고했습니다. 규모가 나오면 “불리하지 않은 조건”의 기준선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처음으로 보입니다.
- 반도체 관세의 세율과 시행 시점 — 지금은 예고뿐입니다. 232조 조사 결과와 행정명령 문안이 나와야 실제 숫자가 생깁니다.
- 무관세 물량 연동이 실제 문안에 들어가는지 — 들어가면 약속이 아니라 실적으로 혜택이 갈립니다.
-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대미 투자 관련 공시나 발표 — 협상 카드가 바뀌는 자리입니다.
- 중동 상황 — 이란이 쿠웨이트·UAE 미군기지를 타격하며 확전 국면입니다. 유가가 다시 오르면 관세와 무관하게 지수가 눌립니다.
Market Unfolded 해석
오늘 나온 것은 관세율이 아니라 방법론입니다. 그런데 방법론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미국은 의약품에서 이 방식을 한 번 돌려 봤고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높은 세율을 걸고, 원하는 행동을 한 쪽에만 문을 열고, 나라별로 조건을 다르게 준다. 반도체는 그 설계도의 두 번째 적용 대상입니다.
한국에 유리한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두 회사는 이미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문이 열리는 조건을 일부 충족한 상태에서 협상이 시작됩니다.
불리한 대목도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보장은 절대 수준이 아니라 상대 순위입니다. 기준선을 올리는 것은 경쟁국이고, 그 속도를 우리가 정하지 못합니다.
저희 가설: 한국 반도체의 대미 조건은 관세율 협상이 아니라 대미 투자 규모가 정한다 (9월 3일 제시)
오늘 판정: 신규 제시 — 러트닉이 세율을 말하지 않고 투자 연계와 경쟁국 투자 계획을 함께 말했습니다. 틀렸다면, 추가 투자 발표 없이 관세 감면이나 면제를 받아 내는 사례가 나옵니다. 그날이 이 가설의 반증입니다.
Follow-up — 앞으로 추적할 것
- 반도체 232조 조사 결과와 행정명령 문안 — 세율·시행일·면제 조건
- 대만·일본의 대미 투자 발표 규모 — 최혜국 대우의 기준선을 움직이는 쪽
-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미국 생산 계획 변경 여부
- 의약품 관세의 실제 집행 결과 — 반도체판의 예고편이다
- 중동 확전과 국제유가 — 관세와 별개로 지수를 누르는 축
본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국내 지수·업종·종목 등락률은 2026년 9월 3일 정규장 종가 기준입니다. 반도체 관세는 현재 상무장관의 발언 단계로 세율·시행 시점·면제 조건이 확정되지 않았으며, 본문의 구조 설명은 이미 시행 중인 의약품 관세와 공개된 한미 합의 문안에 근거한 저희 해석입니다. 물량 연동 방식은 보도로 전해진 내용이며 최종 문안에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언급된 데이터는 작성 시점 기준으로 이후 변동될 수 있으며, 투자에 대한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